베를린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단연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보 1호 서울의 숭례문과 비슷한 위계를 가진다.

독일에 오면 “브란덴부르크” 라는 단어를 많이 보고 듣게 된다. 왜냐하면 과거 베를린을 수도로 했었던 나라 이름이기 때문에 이 단어를 지금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프로이센이 브란덴부르크를 합병함으로써 베를린은 프로이센이라는 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이 19세기 말에 여러나라로 분열된 독일을 통일을 하면서 베를린은 전 독일의 수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를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의 역사를 알아야 이해가 쉬워진다.

우리나라와 비유하자면, 과거에 한양에는 4대문이 있었듯이 베를린에는 18개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유일하게 남은 문이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이 문의 위치는 장벽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동베를린 안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 동독 지역 안에 이 문이 존재했었다.

베를린 장벽을 기준으로 동베를린이 공산주의였고 서베를린이 자유진영이었다. 베를린의 역사는 동베를린에서 시작되었기에 베를린의 오래된 구시가지는 동베를린 내에 위치해있다고 보면 되겠다.

브란덴부르크 문

파리에서 되찾은 콰드리가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평화의 여신이 4 마리 말을 끄는 이륜 전차인 콰드리가 (Quadriga)가 올라가 있다.

나폴레옹이 1806년에 프로이센을 정복하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콰드리가를 파리로 가져 갔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프로이센의 왕은 무력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전리품으로 파리로 가져간 것이다. 이후 8년 동안  문 위에 콰드리가는 볼 수 없었다.

프로이센은 다른 나라와 동맹하여 해방전쟁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를 이기고, 다시 콰드리가를 문 위에 올려 놓았다. 이로써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개선문이 되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

문 앞 파리 광장에서는 연중 많은 행사와 집회가 열리고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상징하고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왜냐하면 문 주변으로 독일과 2차 대전 때 전쟁해서 이겼던 연합국이자 지금도 세계 강대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대사관들이 모여 있다.

즉, 어떤 행사를 하던 강대국 대사관들이 모인 곳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로 보여지고 퍼져 나가는 방송 효과가 전 독일에서 가장 극대화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 국가적인 공공 행사를 치르는 광장으로 외국 정치 지도자의 연설 장소로도 사용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정통성

브란덴부르크 문을 뒤에서 본 모습이다. 과거에 이 문으로 들어가면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문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관문을 본떠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베를린이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아테네의 전통을 이어받은 도시임을 상징하기 위해서이다.

유럽 문화의 정통성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당시 프로이센의 왕은 그 정통성을 이어 받은 도시로 베를린을 만들고자 의도했던 것이다.

브란덴부르크문 항측도

되찾은 자유를 상징

위 이미지는 구글 인공위성 지도이다. 그리고 문 위 도로변에 있는 빨간 실선은 베를린 장벽이 있던 표시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공산권에 있었던 브란덴부르크 문은 되찾은 자유를 상징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일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자유와 통일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